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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스토리
주변을 둘러보면 공부 꽤나 한다는 한인 학생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내로라하는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흔하다. 그런데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두고서도 일부 어른들은 걱정이 많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학생 수는 분명 눈에 띄게 늘었지만, 그 동안 기울인 노력에 걸맞는 종착지에 안착한 2세대들의 숫자는 기대치를 밑돌기 때문이다. 삶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 이분법적 발상은 분명 유치한 구석이 있다 해도, ‘학벌’ 대비 버젓한 직장을 잡지 못하는 한인 2세대가 적지 않다는 것은 분명 걱정거리다. 이민자 봉사단체의 한 상담가는 “부모들이 공부만 강조하다 보니 정작 이 사회가 요구하는, 그러니까 직장을 잡기 위해 꼭 필요한 ‘스펙 쌓기’에는 소홀히 하는 경향..
한국에서는 한때 ‘답사 여행’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세간의 화제가 된 후부터다. 여하튼 90년대 초중반에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의 사찰을 향해 떠나던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네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 절, 바로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교적 관심을 벗어나서 오랜 세월을 견뎌낸 건축양식과 두툼한 역사에 대해 얘기하며 뿌듯해 하곤 했다. 이곳 밴쿠버에서도 우리 전통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써리와 랭리 경계선 부근에 있는 서광사다. 이 절의 주지인 태응 큰스님을 만났다. 고향산천의 정취가 느껴지는 절태응 스님은 ‘반(半) 농군’의 모습이었다. 기자가 절을 찾았을 때, 스님은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텃밭에서 ..
요리사이자 와인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박찬일씨는 “와인은 밥과 함께 곁들이는 그저 흔하디 흔한 국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와인을 앞에 두고 괜히 고상한 척 하지 말란 뜻이다. 맞다!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물고 이것저것 분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문가들의 몫이다. 보통 사람들은 맛난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게 오히려 행복이다. 이런 즐거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주인공은 와인메이킹 샵을 운영하고 있는 장혜진, 피터 부부다. 와인이 맺어준 두 사람의 인연와인에 의미를 과다하게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두 사람에게 와인은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첫 만남 때부터 와인은 이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와인은 지금 두 사람의 밥벌이이자, 행복의 원칙이다. ‘안주..
대개 새 이민자들은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나 구직활동에 나서기 전, 한 동안 ‘탐색기간’이란 걸 갖는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려면 이런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의견은 다르다. 그는 정착하자마자 1년 동안 접시닦이로 일했고, 그 이후에는 자신만의 세탁소를 차려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주인공은 BC 한인세탁협회의 이강혁 회장이다. “이민 초기에는 누구나 백지상태가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적응기간으로 1년을 갖든, 2년을 갖든 결과적으로는 별로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적응기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좀 곤란하지요.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감만 점점 없어지거든요.” 이강혁 회장은 잘 살아보겠다는 이민 초기의 긴장감이 살아가는 데..
지난 16일 저녁, UBC 아시안센터에는 한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뜻 깊은 잔치가 열렸다. 우리와 핏줄과 피부 색깔이 다른 이들도 이 잔치에 관심을 보였다. 잔치에 초대된 손님이 바로 한국 문단의 거장 조정래씨였기 때문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그가 발표해 온 작품들은 치열했던 한국 근현대사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점이 한반도에 뿌리를 둔 이 땅의 한인들이 조정래씨를 기다린 이유다. 작가는 2007년 신작소설 ‘오, 하느님’(문학동네)을 발표했다. UBC 브루스 풀톤(Fulton) 교수는 이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해 캐나다 사회에 알린 바 있다. 16일 저녁의 잔치는 작가와 번역가가 함께 ‘오, 하느님’에 대해 애기하는 강연회 자리이기도 했다. 행사에 앞서, 조정래씨를 만났다. 다양성을 인정하..
두 번째 독자의 목소리 주인공은 이정범씨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이씨는 98년 이민 온 후, 갖가지 직업을 거쳤다. BC주 북부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기도 했고, 밴쿠버에서는 바틀 디포 매니저로도 일했다. 그리고 약 2년 전부터는 트럭 운전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트럭 운전사로 돈을 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트럭을 몰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한다는 것과 트럭 운전사로 취업한다는 것은 별개의 얘기다. 대부분의 운송회사들은 이른바 ‘초짜’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자격증을 따더라도 별도의 트레이닝, 이른바 연수를 받지 않으면 대형트럭을 몰고 길거리로 나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트레이닝 비용으로 만만치 않은 액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정범씨는 운..
써리에 위치한 믿음교회는 마치 ‘작은 캐나다’처럼 보인다. 영어 예배가 주축이긴 하지만, 교회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남미 출신의 이민자까지 감싸 안는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고, 교회라는 큰 틀 안에서 복합 문화 주의를 경험한다. 김광수 목사가 바로 이 ‘작은 캐나다’를 이끄는 주인공이다. 각기 다른 문화권 출신들을 아우른다는 것이, 담임목사로서 가끔 힘에 부치기도 한다. 그러나 김 목사는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먼 이국 땅 캐나다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그를 행복하게 한다. 내년이면 이민 온 지 어느새 35년째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대 후반의 청년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졌고, 손자의 재롱을 즐길 나이가 되었..
소위 말하는 ‘보편적 장수시대’가 도래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은 매년 그 기록을 달리하고 있으며, 노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점차 커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노년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를 고독 혹은 병약함 따위와 연관시키기보단, 노년기에도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다고 믿는 건강한 ‘백발 청년’들이 늘고 있다. 보편적 장수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나 백발 청년들처럼 보편적으로 행복하고 윤택한 노년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우리 시대는 노인문제라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은 상태다. 훌륭한 사회복지 시스템을 자랑하는 캐나다 사회도 고령화 사회가 유발한 갖가지 문제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행복하거나 불행한 이유를 사회 시스템에서 찾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경..
요즘 신규 이민자들은 전에 비해 훨씬 많은 ‘정보’를 갖고 이 땅에 건너 온다. 인터넷 덕분이다. 하지만 그 정보들 중 일부는 이민생활이란 현실에 직면했을 때 종종 가치를 상실하곤 한다. 정보가 부정확했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 석세스 써리 센터의 장기연씨는 “어설픈 정보는 오히려 초기 정착의 방해물”이라고 말한다. 한국에 있을 때, 가정학 박사로 대학 강단에 섰던 장기연씨는 지난 99년에 가족과 함께 밴쿠버에 정착했고, 이민자 봉사단체 ‘옵션스’를 거쳐 현재는 석세스 써리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영어 못하면 반쪽 짜리 이민생활이민 초기, 장기연씨는 ‘언어 장벽’을 극복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영어 12학년 과정을 마쳤고, 칼리지에서 사회봉사 과정도 공부했다. 영어공부를 하면서, 그녀는 캐나다 ..
월남전이 공식 종료된 지 3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이 전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전쟁이 남긴 후유증에 먼저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한 가지 확실한 공통분모가 있다. 아깝게 희생된 청춘을 기억하자는 것이다.해병대 6대 전첩의 하나로 불리며, 월남전 중 가장 화려한 승전보로 기록되고 있는 ‘짜빈동 전투’. 이 전선의 화기소대장이었던 전 해병대 부사령관 김기홍 교수(목원대)도 “중대원 열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사람들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는 말로 당시의 사투를 회상하기 시작했다.짜빈동 전투는 180명의 중대 병력으로 2000여명의 상대를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