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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스토리
낯선 땅에 정착한 이민자에게 성공은 무엇일까? 넓직한 마당을 과시하는 하우스와 그 앞에 주차되어 있는 고급 자동차가 성공의 첫 번째 모습이 될 수 있겠다. 반듯하게 자라나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어 준 자녀 역시 애써 살아온 날들에 대한 보답이 되기에 충분하다. 좀 소박하게 보자면 푹신푹신한 소파 위에 앉아 맥주 몇 잔과 함께 즐기는 하키 중계에서 성공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성공 혹은 그로 인한 행복감은 자로 잰듯 계량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저마다의 정의는 오답을 가린다는 게 거의 무의미하다. 하지만 밴쿠버에서는 ‘성공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한가지 조건을 대지 못하면 정답 처리가 좀 힘들 것 같다. ( )을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는 성공했다 말 할 수 없지, 라고 주장하는 사..
1992년에 만들어진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은? 우선 등장하는 이름은 말할 나위없이 브래드 피트겠지만, 20여 년 전 극장 간판에 대한 기억이 보다 선명한 몇몇 사람들은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노년의 낚시꾼을 맨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확실히 이 영화는 남자 배우의 풋풋함이나 반항기 뿐 아니라 낚시의 매력도 고스란히 담아냈다. 온통 초록빛인 자연을 배경으로 낚시줄을 감거나 푸는 영화 속 인물들의 몸짓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런 황홀한 풍경이 현실에서 연출되는 곳이 바로 밴쿠버다. “무(無)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취미”밴쿠버는, 범위를 조금 더 넓혀 BC주는 적어도 낚시꾼들에게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곳처럼 보인다.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강과 호수가 코앞이고,..
햄버거는 사소한 음식이다. 햄버거 입장에선 좀 안쓰럽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패스트푸드점 계산대에서 후다닥 주문을 마치고 나면, 곧이어 달작지근한 탄산음료와 함께 등장하는 햄버거. 자신을 담은 그릇도 없이 쟁반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 음식을 요리라고 부르기엔 다소 민망하다. 토마토, 치즈 등으로 분장해 봤자 격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다. “오늘 점심으로 뭐 드셨어요?”라는 질문에, 패스트푸드점을 다녀온 사람들은 대개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그냥 햄버거로 대충 때웠어요.”라고 답하기 일쑤다. 먹었다는 말보다 때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음식, 그게 바로 햄버거다. “버거는 버거일 뿐, 뭐 다를 게 있나?” 스카이트레인 메인스트리트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햄버거 가게 ‘투다인포이터리’(To din..
미지의 길에 발을 들여놓기란 언뜻 봐도 무척 버겁게 느껴진다. 길을 개척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경우에는, 스스로 자신 인생의 가이드가 될 수밖에 없다. 수의사 김정래씨도 외롭게 미지의 길 위에 서 있었으며, 지금은 목적지까지 잘 달려 왔다. 적어도 밴쿠버 한인사회에서 수의사는 무척 생소한 직업이다. 사실이 그렇다. 더듬이를 세워 보았지만 한국말을 구사하는 동물병원 원장은 그 동안 단 한 차례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 수의사로 활동하다 이민 후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은 더러 있긴 했어도, 한인 동물병원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다. 그 미지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어반(Urban)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래 원장이다. 언어 장벽 없이 수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 ..
2002년 11월 이윤경씨는 홀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그래서 더욱 힘겹고 외로운 선택이었다. 한국의 한 대형은행에서 VIP 고객을 전담 관리했던 그녀에겐 달콤한 미래도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윤경씨에게 미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흔든 것은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어린시절부터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서 그런지 서로간의 정이 애틋했죠.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도저히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어요.”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6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쇠약했다. 낙상사고로 몸져 누워있는 할머니를 손녀는 정성스레 간호했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노인복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