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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리 서광사, 태응 큰스님을 만났다

Myvan 2017. 7. 16. 07:53

한국에서는 한때 ‘답사 여행’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세간의 화제가 된 후부터다. 여하튼 90년대 초중반에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의 사찰을 향해 떠나던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네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 절, 바로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교적 관심을 벗어나서 오랜 세월을 견뎌낸 건축양식과 두툼한 역사에 대해 얘기하며 뿌듯해 하곤 했다. 이곳 밴쿠버에서도 우리 전통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써리와 랭리 경계선 부근에 있는 서광사다. 이 절의 주지인 태응 큰스님을 만났다.






고향산천의 정취가 느껴지는 절

태응 스님은 ‘반(半) 농군’의 모습이었다. 기자가 절을 찾았을 때, 스님은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텃밭에서 잡초를 골라내고 있었다. 노동이 일상화된 스님은 풍성한 텃밭을 바라보며 이렇게 얘기했다.


“절은 열린 공간입니다. 누구나 찾아와 한국의 전통문화를 감상하며 쉴 수 있는 곳이지요. 매주 일요일이면 신도들과 공양(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을 하는데, 이 텃밭의 야채가 우리에겐 소중한 먹을 거리가 되어 주죠. 공양 때도 누구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고향 산천의 정취가 그립다면, 이곳에서 그 맛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한 손에 괭이를 들고 텃밭을 일구는 스님은 꽤 한가롭게 보였지만, 실제로는 불교계에서 누구보다 바쁜 사람 중 한 명이다. 종교지도자로서의 이력도 화려하다. 56년 출가한 스님은 그 동안 조계사, 통도사의 주지와 불교방송 초대 대표를 역임했다.


“밴쿠버는 1년에 한번 정도 방문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서광사 주지인 태응 스님은 경남 원각사 해동선원 원장도 겸임하고 있다) 캐나다는 사람이 살아가기 참 좋은 공간입니다. 광활한 땅과 자원, 그리고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법대로 살려고 하고 예술을 중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보기 좋지요.”


행복은 ‘긍정적 사고’에서 나온다

축복받은 땅 밴쿠버, 이곳에서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스님에게 길을 물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려면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디딘 갓난아이가 되어야 하지요. 갓난아이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옷도 입지 않고 값비싼 시계도 뽐내지 않습니다. 말도 할 줄 모릅니다. 그 상태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비우는 공부’입니다.”


한국에서의 위치에 집착하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그 불만은 정신을 병들게 하고, 정상적 삶에서 멀어지게 한다. 긍정보다는 부정이 지배하는 삶이다.

“좋고 나쁨을 먼저 따지지 말고, 일상에 대한 어떤 거부감 같은 것이 없어야 합니다. 남을 괄시해서도 안됩니다. 내가 괄시했던 사람이 언젠가는 나를 점령합니다. 이것은 피해갈 수 없는 진리입니다. 불행해지고 싶지 않다면 남을 불행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혹자는 교민사회가 갈등으로 얼룩졌다고 말한다. 시기와 질투가 만연하다고도 얘기한다. 그런데 스님의 생각은 다르다.


“교민사회가 병들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갈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나쁘게만 볼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갈등, 경쟁을 통해 성숙 발전해 온 민족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뿌리입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것이 우리의 장점이지요. 한인들이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인터뷰를 끝내고 스님은 괭이를 들고 다시 밭으로 갔다. 스님의 땀을 거름 삼아 수확된 야채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입을 행복하게 한다.


*이 인터뷰는 2009년 5월 2일에 작성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