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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스토리
그녀는 “사업운 혹은 복(福)이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편의점, 커피가게,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까지, 이민 후 여태껏 해왔던 일 모두가 정상 궤도만을 고수해 왔으니, 그녀의 진술은 참에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의 자기 소개서를 살짝이라도 들춰본 사람이라면 이내 알게 된다. 달콤한 성공이 타고난 운이나 복 때문만은 아니라는, 삶의 단순한 비밀을 말이다. 그녀는 부동산 중개사, 에밀리 오씨(사진)다. 부동산 중개사로서 에밀리 오씨의 명성은 숫자를 통해 쉽게 설명된다. 부동산 중개사 명함을 만든 첫 달에, 에밀리 오씨는 여섯 건의 거래를 곧바로 성사시킨다. 그리고 바로 그해 총 75건의 매물을 소화하며 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놓게 된다. 메이저리그나 NBA로 치자면, 이제 막 첫발을 내디..
대학교를 제때, 그러니까 4년 만에 졸업했다는 이력서상의 기술은 어느 면에서는 자랑 거리가 되기 어렵다. 아무런 생존 기술 없이 정글 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랭가라칼리지 코업 및 직업개발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양수현씨(사진)의 이야기다. “4년만에 대학 졸업? 자랑이 아니다” 캐나다 대학은 한국 대학에 비해 입학은 쉽지만 졸업하기는 어렵다는 통념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일부 한인 1세 부모들 사이에에서는 제 시기에 대학 과정을 마쳤다는 사실이 칭찬 받을 이유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강의실과 도서관 그리고 집을 정확한 시계추처럼 오고간 경험은 분명 똑똑하고 착실함의 증거로 채택될 수 있겠다. 하지만 대학을 다닌 목적이 취업이었다면 '공부만 열심히 했다'는 주장은 구직 활동 시 이렇다 할 무기..
‘성공 스토리’에는 세간의 이목이 늘 쉽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반듯한 집과 자동차, 혹은 넉넉한 통장 잔고를 보유하게 된 배경이, 보통사람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이를 주제로 한 설명회는, 단조롭고 지루한 주장으로만 채워질 때가 많다. 특히 어린 10대 학생 대상의 이른바 성공 강좌는 ‘명문 대학 쉽게 들어가기’라는 단순 메뉴에만 집중하기 일쑤다. 이런 종류의 설명회에서는 성공의 겉모습, 즉 껍데기가 주연일 뿐 정작 그 속을 채우는 문제는 ‘나중에 해도 괜찮은 일’ 정도로 취급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중에 해도 될 일’을 차근차근 해 온 사람이,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얘기에 현혹된 사람보다 성공의 종착지를 점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
1인 무역회사 의 김진기 대표(사진)는 솔직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불필요한 수식어를 보태지 않는다. 그저 솔직 그리고 담백하게 지난 시절의 창업 스토리를 진술할 뿐이다. 복잡하게 혹은 어렵게만 비춰지는 무역회사 설립과 운영에 대해 20세 후반의 이 청년은 “별 다를 거 없다”는 다소 싱거운 결론을 내렸다. “치과의사 꿈꾸다 무역으로 눈을 돌렸다” 김진기씨의 인생 항로가 처음부터 "무역"으로 설정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장사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의 목표는 달랐다. 토론토대학교에서 휴먼바이올로지를 전공한 그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뒤 가야 할 목적지를 수정했다. 사이언스 전공자는 의대나 치대 등에 합격하지 못하면 선택의 폭이 급..
밴쿠버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땅에서 키워지고 교육받은 1.5세나 2세 역시 높기만 한 취업 문턱 앞에서 한숨을 지을 때가 많다. 좀 더 암울하게 얘기하자면 “이력서를 100통이나 보냈는데 면접하자는 연락조차 받아본 적이 없어요”라는 하소연 또한 낯설지 않다. 일터를 찾는 게 왜 이리 힘들어진 것일까? 문두진씨(사진)를 만나기 전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다. 그는 “냅캐나다”(Nav Canada)에서 기술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보장된 미래 대신 밴쿠버를 선택하기까지” 냅캐나다는 캐나다 교통부(Transport Canada)에서 항공 관리 부문만을 따로 떼어내 만든 공기업으로, 한국의 공항공사와 비슷한 조직이다. 공공 기관인 탓에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도 매우 높고 급여 수준..
특정한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행위, 즉 공증은 적어도 새 이민자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익숙한 단어다. 공증이라는 절차를 통해 한국에서의 경력 혹은 학력 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위임장을 보내거나 영주권 카드를 다시 발급받아야 할 때도 공증은 필요하다. 이쯤 되면 공증은 마치 우리네 일상 생활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증사(Juris Notary)는 비교적 낯선 직업이다. 영사관 등에서 공증 업무를 해결해 봤던 사람들은 “공증사가 대체 뭐지?”라며 의아해 할 지 모른다. 어떤 이는 공증사의 필요성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나타낼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곳 BC주에서 공증사는 위임장 위에 단순히 도장 하나 눌러주는, 그런 일만을 취급하지 않는다. 법적 다툼이 필요하..
처음으로 식당 창업을 염두에 둔 사람이라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을런지 모른다. 그래서 업계 선배들을 만날 때마다 묻고 또 묻는다. 가게 하나 여는데 보통 얼마 정도 필요한가요? 작은 돈으로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음식 장사로는 뭐가 있지요? 임대료는 얼마나 해요? 그거 팔아서 먹고 살 수는 있나요? 스시롤 딱 두 종류만을 팔던 자그마한 가게를 시작한 후 일식집, 뷔페 식당을 연달아 안착시킨 정재창씨(사진)에게도 창업 희망자들의 질문은 당연히 쏟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물음표를 지워줄 숫자들은, 적어도 그가 제시한 답변집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가려운 곳에 적용할만한 효자손 대신, 정재창씨는 자신의 인생사부터 담담히 털어놨다. 그 안에 식당 창업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혹..
통장의 잔고 수위가 어느 높이쯤 돼야 평균적인 인간들은 평범하게 행복하다 말할 수 있게 될까? 최근 리치몬드에 ‘한옥’이란 한식당을 연 이명순씨가 이 질문에 답한다. 반듯한 사장님 ‘맨바닥’부터 다시 시작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얘기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 혹은 한국에 있을 당시 지녔던 명함에 여전히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명순씨 앞에서는 자기자랑을 잠시 접는 게 좋을 듯 싶다. 왠지 억척스러움이 느껴지는 그녀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예식장 몇 곳을 운영하던 반듯한 사장님이었다. 사업을 대충 접고 97년 밴쿠버에 처음 정착했을 때만 해도 경제적으로는 큰 모자람이 없었다. “처음 이민 오고 나서 만 5년 동안을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벌어놓은 돈으로 생활했던 거죠. 그러다 다시 한번 사업..
태양의 신(神)으로 유명한 아폴로, 혹은 아폴론은 실은 음악의 신이자 의술의 신이기도 했다. 음악의 신이 의사를 겸직했다는 것은 솔직히 화들짝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굳이 그리스·로마 신화 속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음악이 적지 않은 치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는 주변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실연당한 청춘 남녀에게 있어 유행가는 때로는 벗들의 넋두리 같은 위로보다 더 큰 효력이 있다. ‘저 가수가 어떻게 내 마음을 고스란히 노래했지?’라고 감탄하는 사이, 실연당한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간다. 그렇고 그런 유행가가 누군가에게는 ‘새살’ 돋게 해주는 연고가 되어 주는 것이다. 성당이나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성가도 마찬가지다. 경우에 따라 이 노래들은 지친 영혼..
의료분야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병원 속을 살짝 들여다 보면 의사나 간호사 이외에도 각양각색의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한지붕 아래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이번 인터뷰에 얘기될 방사선사도 그 중 하나다. “시험 통과하면 한국의 자격증 인정받을 수 있어” 써리메모리얼병원에서 방사선사로 일하고 있는 배재현씨는 ‘준비된 이민자’로 분류될 수 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캐나다에서는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지 등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이민을 결심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그 길을, 당사자인 배재현씨와 함께 복기해 보았다. -밴쿠버와의 첫 인연은 언제였나요?한국에서도 방사선사로 일했는데, 야간 근무다 뭐다 해서 당시 일이 꽤 고됐어요. 그래서 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