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토리
캐나다 밴쿠버에서 음악치료사로 살기 본문
태양의 신(神)으로 유명한 아폴로, 혹은 아폴론은 실은 음악의 신이자 의술의 신이기도 했다. 음악의 신이 의사를 겸직했다는 것은 솔직히 화들짝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굳이 그리스·로마 신화 속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음악이 적지 않은 치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는 주변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실연당한 청춘 남녀에게 있어 유행가는 때로는 벗들의 넋두리 같은 위로보다 더 큰 효력이 있다. ‘저 가수가 어떻게 내 마음을 고스란히 노래했지?’라고 감탄하는 사이, 실연당한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간다. 그렇고 그런 유행가가 누군가에게는 ‘새살’ 돋게 해주는 연고가 되어 주는 것이다.
성당이나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성가도 마찬가지다. 경우에 따라 이 노래들은 지친 영혼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어루만져 준다. 이처럼 음악이 지닌 효능을 눈여겨 볼 때마다, 아폴로가 음악의 신으로, 또 의술의 신으로 왜 그렇게 분주히 살았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작곡과 학생 ‘음악 치료’와 처음 만나다
‘음악 치료사’라는 직업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음악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이 직업 자체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온다. 현재 ‘뮤직 무브즈’(Mewsic Moves)라는 공간에서 음악 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김남교씨에게도 첫 시작은 낯설었다.
“숙명여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는데, 4학년 때 ‘음악치료 개론수업’을 듣게 됐어요.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다는 강의 내용에 흥미를 느꼈지요.”
졸업 후 부모를 따라 캐나다에 정착한 그녀는 작곡이 아니라 ‘음악 치료’ 쪽으로 자신의 진로를 수정했다. 우선 공부가 필요했다.
“먼저 캐나다 학교를 알아봤는데, 석사 과정을 제공하는 대학이 한 군데에 불과했어요.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지요. 그래서 미국으로 눈을 돌렸고, 그곳에서 2년 6개월 동안 석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학부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경우라면,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무사히 학업을 마쳤다고 해서 곧바로 치료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관련 시험을 통과해야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1000시간 동안 인턴으로 일해야 마침내 자격증이 주어진다. 문제는 인턴 때에는 보수를 거의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참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어떤 사명감 없이 단지 뭔가 좀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이 직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별로 현명한 선택이 못 된다.
연봉 수준도 콕 짚어서 얘기하기 좀 곤란하다. 경우의 수가 많아서다. 그래도 김남교씨는 자신의 일이 좋다. 음악으로 누군가와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
“저는 운이 좀 좋았던 것 같아요. 인턴 과정을 마친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취직할 수 있었거든요.”
음악 치료사들은 종합병원이나 치료센터, 어린이집, 학교, 지역 커뮤니티 센터, 약물중독 치료기관, 양로원, 호스피스, 감호시설 등에서 일할 수 있다.
음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음악 치료사로서 그녀는 어떤 병을 치유할까? 흔히들 얘기하는 난치병은 그녀의 치료 영역이 아니다. 그 부분은 현대 의학이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남교씨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쓰디쓴 약물 대신 달콤한 음악으로.
“음악 치료사들이 하는 일들은 많아요. 우울증에 시달리다 사회와 단절되게 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일도 주업무 중 하나지요. 하지만 저는 자폐나 다운증후군 혹은 기타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관심이 더 많았어요. 뇌졸증을 앓았거나 치매로 고통받는 어르신들도 돌봐드리고 있습니다.”
자폐증 환자들은 자신의 마음에 두터운 자물쇠를 걸어 둔다. 아직까지 현대 의학은 그 문에 딱 맞는 열쇠를 찾지 못했다. 자기 안에 갇힌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현재로선 거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김남교씨는 숱한 음표 속에서 그 답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쉽게 설명드리면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숨어 있던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제가 하는 일이에요.”
처음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아이들이 음악에 반응할 때 김남교씨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세상의 언어로는 인사조차 하지 못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헬로우송’이라는 노래에 맞춰 아이가 제게 인사를 건넵니다. 참 가슴 뭉클해지는 경험이에요.”
그녀는 자폐증 환자와 노래로 대화한다. 처음에는 인사를 하고, 조금 더 나아가면 시장에서 물건 사는 방법을 함께 찾는다.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게 있는데, 음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음악치료는 신체 및 정신 건강을 개선하고 유지시키기 위해 음악이라는 도구를 단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지요.”
음악치료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동 뿐 아니라 성인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희 ‘뮤직 무브즈’에서는 지난 3월부터 12주 동안 ‘글리 콰이어’(Glee Choir)라는 이름으로 그룹 음악치료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프로그램은 비영리단체인 ‘커뮤니티 리빙 BC’(www.communitylivingbc.ca)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한인 대상의 그룹치료 프로그램 9월에 시작
‘글리 콰이어’에 참여한 사람은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나씩 골랐다. 12주가 흐르는 동안 노래를 통해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결국 합주도 할 수 있게 됐다. 그 흔적은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CD로 기록되어 있다.
“BC주는 발달 장애를 지닌 6세에서 18세 사이 아동 및 청소년들에게 매년 6000달러를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 돈은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요. 진단서를 첨부해서 ‘어티즘 펀딩 유닛’(Autism funding unit)에 신청하면 됩니다.안타까운 것은 성인이 된 후에는 지원이 끊긴다는 점이에요.”
음악치료 비용은 다양해서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지만, 45분당 75달러 정도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코 만만치 않는 비용이다. 하지만 ‘뮤직 무브즈’는 그 부담을 조금 낮추고 자폐증 환자들에게 다가서려 한다.
“9월부터는 한인들만을 대상으로 ‘글리 콰이어’ 3차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해요. 일주일에 한 시간 총 12주 동안 진행되는데, 비용은 299달러로 책정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대는 17세에서 35세까지에요.”
인터뷰 말미에 그녀에게 이 일을 하면서 힘든 순간은 없었는지 물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저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게 힘들다고,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아이들이 제게 ‘하이’하며 인사해 줄 때 느끼는 보람이 힘든 것보다는 훨씬 크고 감동적이니까요.”
*이 인터뷰는 2012년 7월 27일에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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