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토리

줄리어드 음대 이경원, 음악은 이래서 즐겁다 본문

사람들

줄리어드 음대 이경원, 음악은 이래서 즐겁다

Myvan 2017. 7. 6. 15:28
어김 없이 연말이다. 거리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캐롤송에, 종교의 벽과는 상관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습관처럼 마음을 여는 시기다. 음악이라는 것이, 이래서 놀랍다. 형편 없는 사람들이 종종 차별의 근거로 제시하는 종교, 인종, 주로 사용하는 언어 등도 음악을 즐기는 데 있어서는 그닥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음’(音)에는 누구나 ‘즐겁게’(樂) 반응할 수 있어서다. 줄리어드 음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밴쿠버에서 활동 중인 클라리넷 연주자 이경원씨와 음악이 줄 수 있는 선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욕에서의 음악 생활, 배수의 진을 쳤더니….”
이경원씨에게 음악은 처음부터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클라리넷 연주자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다. 이게 다가 아니다. 형은 대학에서 오보에를 공부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은 바이올린을 전공할 계획이다. 이경원씨는 “유치원 때 클라리넷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그 다음부터는 음악하는 것이 말 그대로 생활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 이외의 다른 삶은 생각하기 어려웠겠네요. 
한마디로 외길 인생인 셈이죠. 간혹 힘든 적도 있었지만, 음악에 대한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어요. 흔히 ‘한 우물만 파라’고들 하잖아요. 아버지가 자주 하신 말씀이기도 한데, 그 속담대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뉴욕으로 가게 됩니다. 처음부터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하게 된 건가요?
아니요, 첫 학교는 매니스 음대였어요. 비전공자들한테는 그리 널리 알려진 학교는 아니지요. 캐나다내 대학에도 지원은 하긴 했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던 거였죠.

음대 지망생 중에는 미국 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미국, 특히 뉴욕 소재 대학에는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교수들이 포진해 있거든요. 그 사람들 밑에서 음악을 배우고 싶은 마음 같은 게 다들 있는 거죠. 저도 물론 그랬구요. 또 뉴욕의 음악 시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겠지요. 음악가들에게는 여러 가지 기회가 많은 곳이니까요.

매니스에서 줄리어드로 학교를 옮긴 이유가 있었을텐데요.
매니스도 매우 좋은 학교이긴 한데,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요, 여하튼 저는 좀 치열하게 살고 싶었어요. 더 큰 경쟁을 원했고, 그런 면에서는 줄리어드가 더 괜찮을 거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줄리어드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음대생, 혹은 음악을 꿈꾸는 후배들이 참 부러워할 만한데요.
음악하는 데에는 특히 뉴욕에서의 유학 생활을 견디기 위해서는 당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지요. 그 부분은 저도 큰 부담이었어요. 솔직히 매니스에서는 원하는 만큼의 장학금은 받지 못했는데, 줄리어드로 옮길 당시 일종의 배수의 진을 친 것 같아요. 장학금을 받으면 뉴욕에 남아 계속해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거고, 반대의 경우엔 밴쿠버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랬더니 독기 같은 게 생기더군요. 

장학생 선정 기준이 궁금한데요. 어떻게 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일단 성적은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은 유지해야 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기 테스트죠. 오디션에서 어느 정도의 연주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죠. 그런데 이후에 또 중요한 과정이 있어요. 학교 측과 ‘계약’을 잘해야 해요. 통상 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갖추게 되면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장학금을 제시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예일 음대 대학원은 한마디로 공짜에요. 전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 혜택을 준다는 얘기죠. 이 사실을 잘 활용하면, 타 대학 음대 대학원을 진학할 때 더 많은 장학금을 요구할 수 있겠지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이 된다면 말이지요. 뉴욕에서는 학교 측과 이처럼 딜을 하는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음악인들에게 있어 뉴욕은 기회의 땅으로 통하고, 그곳에서 줄리어드 음대 졸업이라는 나름 큰 성과를 거뒀는데, 굳이 밴쿠버로 돌아온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뉴욕에서 살고 싶다, 그곳에서 내 가정을 꾸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어요. 뉴욕이 음악 관련 기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 삶도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밴쿠버로 돌아온 거죠. 이게 2014년 때의 일이에요.

밴쿠버의 어떤 면이 내 삶을 꾸려도 될 정도로 매력적이었나요?
가족이 모두 밴쿠버에 있다는 게 뉴욕을 떠난 이유 중 하나겠지만, 이것 말고도 밴쿠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솔직히 밴쿠버의 음악 수준이나 관련 시장 규모가 뉴욕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곳에서 음악을 하며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경원씨는 현재 밴쿠버아일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단원이며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는 객원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가 아니어도 음악을 꿈꾸어야 하는 이유”

음악 전공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이라는 게 좀 협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보면 공연 아니면 레슨, 이렇게 둘 아닌가요?
음악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꽤 넓은데, 너무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게 좀 안타까운 부분이지요. 저는 후배들이 현실적인 부분에서 좀 더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음악을 전공하고 음악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될 거 같아요. 막연한 꿈을 꾸는 대신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고,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이에 따른 계획을 세웠으면 합니다.

밴쿠버로 돌아온 후 소위 아마추어와의 교류도 활발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테면 비전공자로 구성된 음악 단체 ‘유빌라테 클라리넷 앙상블’의 음악 감독으로도 활동 중이지요?
맞아요. 유빌라테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 모두, 저와 제 아버지만 빼면 모두 아마추어죠. 처음에는 그저 즐기기 위한 만남이었는데, 차츰 연주를 맞춰가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어떻게요?
우리만 좋고 끝날 게 아니라 음악을 통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자선 연주회를 기획하게 됐어요. 금년 초에도 연주회를 했는데, 그때 모금한 돈은 ‘프리더칠드런’이라는 단체에 기부했어요.

이번에는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자선 연주회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오는 11일(일) 저희 단원 중 한 분 자택에서 작은 규모의 하우스 콘서트를 열 계획입니다. 당일 모아진 돈은 밴쿠버한인장학재단에 기부할 생각이구요. 음대생 혹은 음대 입학을 앞둔 후배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떤 음악을 들려줄 계획인가요?
클라리넷은 낼 수 있는 음역대가 굉장히 큰 악기에요. 아주 낮은 저음부터 아주 높은 고음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지요. 이 악기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다만 하우스 콘서트인 만큼, 딱딱한 분위기는 지양하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음악, 트로트까지 다양한 연주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프로가 아니어도, 혹은 프로를 꿈꾸지 않는다 하더라도 음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여럿이 어울려서 음악을 하다 보면, 왜 음악을 해야 하는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저희 <유빌라테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들이 한결 같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매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행복함이, 삶의 활력이 느껴진다고. 이분들이 프로가 아니어도 음악과 가깝게 지내야 하는 이유인 셈이죠.



*이 인터뷰는 2016년 12월 2일에 작성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