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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뮤지스 오브 스타엠파이어 이학준 감독, 한류 이끄는 걸그룹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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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뮤지스 오브 스타엠파이어 이학준 감독, 한류 이끄는 걸그룹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Myvan 2017. 7. 5. 11:09
한류는 뭔가 있어 보이는 남자 배우들의 일본 진출과 함께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강남스타일’을 통해 마침내 전세계 곳곳에 인식됐다. 이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을 살짝 웃도는 정도다.

확실히 한류라는 신조어 속에서는 한국 대중문화의 숨가쁠 정도로 빠른 성장속도가 느껴진다. 마치 한강의 기적이 한국 경제의 쾌속 질주를 상징하는 것처럼.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말 그대로 눈부신 성장이 온통 장밋빛으로만 장식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발전은 풍요 뿐 아니라 쓰린 부작용도 품고 있었다. 제 32회 밴쿠버국제영화제(VIFF)에 초대된 이학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인뮤지스 오브 스타엠파이어>는 한류의 화려한 무대 저편에 숨겨진 속살을 조명한다.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에 대한 감독의 해석이다"

영화는 대한민국의 5대 연예기획사 중 하나인 스타제국, 그러니까 ‘스타엠파이어’에 소속된 걸그룹 ‘나인뮤지스’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주로 담고 있다.

이른바 아이돌그룹의 탄생 스토리, 혹은 신화는 이곳 밴쿠버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사인 듯 보인다. 이학준 감독을 인터뷰했던 날, 그는 약속 장소에 30분 늦게 도착했다. 중국계 신문사가 그를 놔주지 않아서다. 이 감독은 <나인뮤지스 오브 스타엠파이어> 이전에 탈북자의 인권 문제를 다뤄 큰 논란이 됐던 작품 <천국의 국경을 넘다>를 만든 바 있다.



영화가 걸그룹을 다룬다고 해서 뭔가 발랄한 것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한국 대중문화의 치부를 일부 드러냈습니다. 한류의 부작용을 털어놓는 것이 원래 기획의도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헐리우드의 <드림걸즈>(2006년에 제작된 영화로 여성그룹의 성공스토리를 담았다) 풍의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어요. 첫 작품인 <천국의 국경을 넘다>가 너무 무거운 얘기를 다뤘던 탓인지 이젠 좀 밝은 내용을 찍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의도와는 다르게 어두운 면을 보게 된 거죠. 어찌됐건 걸그룹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무대 위 사람들의 뒷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그 모습을 간혹 동경해 왔고, 또 무척 긍정적일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안 좋은 부분도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 영화가 한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감독으로서 참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단점을 드러낸 것이니까요.
맞아요. 고민이 참 많았죠. 행여나 제가 만든 다큐가 한류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참 무거웠어요. 그런데 애국심이나 뭐 그런 비슷한 이유로 씁쓸한 부분을 덮어버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어요. 다른 나라 사람에게 한류의 이면이 먼저 목격되는 것보다는 우리가 우리의 얘기를 털어놓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거죠. 한편으로는 어떤 자신감 같은 것도 있었어요. 한류의 부작용을 얘기한다고 해서, 그 동안의 뛰어난 성취가 물거품이 될 리 없다는 확신이 있었지요.

그래서 그 부작용을 속시원히 다 풀어놓았나요?
아니요. 편집을 여덟 번이나 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영화가 많이 순해졌지요. 다 보여줄 수는 없었거든요.

뭔가 꾸몄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다큐멘터리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처음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저 역시 한치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감독의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죠. 같은 소재를 다룬 기사도 어떤 것을 맨 앞에 두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많이 달라지잖아요.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감독이 어떤 것을 앞에 세우는지, 팩트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지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니까요. 그런데 그런 해석을 내릴 때마다, 내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 자꾸 되묻게 되요. 사회부 기자 시절과는 달리 많이 겸손해진 거죠.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큐 작업이 제게 준 어떤 선물일지 몰라요.
(이 감독은 본국 조선일보에서 탐사보도를 주로 담당했던 기자다. 현재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조선일보 크로스미디어 총괄로도 일하고 있다.)






                                                   이학준 감독. 그는 조선일보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이 일이 너무 싫고 도망가고만 싶지만…"

영화를 보면서 기획사 스타제국이 왜 다큐 촬영을 허용했는지 그 점이 좀 궁금했어요. 걸그룹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장본인일텐데 말이죠.
촬영 허가를 받기 위해 6개월을 따라다녔어요. 결국엔 승낙을 받았는데 소속사 대표가 한 가지 조건을 걸더군요. 1년 동안 나인뮤지스 매니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촬영해도 좋다고.

승낙의 이유가 단지 끈질긴 간청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정치인과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을 원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해요. 그 관심이 나쁜 것이라도 상관 없어요. 관심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좋으니까요. 기획사 측에서는 아마 제 영화가 나인뮤지스에 대한 관심을 불어일으킬 거라 생각했겠지요. 저는 그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BBC에서 제 작품을 방영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죠. “속모습을 알게 되니까, 오히려 나인뮤지스가 더욱 좋아졌어.”

영화를 보면 나인뮤지스 멤버들은 서로를 회사 동료로 인식하고 있더군요. 흔히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끈끈한 정 같은 걸로 얽혀 있을 것 같은데….
나인뮤지스는 말 그대로 아홉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에 누가 빠져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어요. 그 빈자리는 누군가로 항상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멤버들도 이걸 잘 알고 있어요. 

매니저가 캐스팅 에이전시를 찾아가서 대체 멤머를 부탁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때 매니저와 캐스팅 에이전시 담당자가 나누는 대화가 좀 불편하게 느껴지더군요.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태도는 시장에서 상품을 팔거나 주문하는 모습을 보이잖아요. 캐스팅 에이전시의 반응도 좀 놀라왔어요. 이런 식으로 얘기했지요. “요즘엔 예쁜 건 기본이고 몸매도 웬만하면 다 받쳐줘요.”
저도 그렇게까지 얘기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캐스팅 에이전시 사무실을 가득 메운 프로필 파일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연예인이 되려고 하는지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이러한 상황이 좀 우려되기도 하고….

왜 아이들이 무대에 끌리게 되는 거죠? 왜 스타가 되려고 하는 걸까요? 
나인뮤지스 멤버 중 한 명, 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수 차례 포기하려고 했던 그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 일이 너무 싫고 도망가고 싶은데, 내가 할 줄 아는 건 노래하고 춤밖에 없어. 무대 위에 올라가면 그게 너무 좋아. 다른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면 행복해.”
그 아이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싫어도, 괴로워도 계속 매달리고 싶은 것. 어찌 보면 마약과 비슷한 거죠. 한번 그 맛을 들이게 되면 벗어나기 어렵다는 면에서….

그렇다면 스타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만든 아바타가 아닐까요. 스타의 모습은 소비자들이 만든 욕망일 수 있겠죠. 이를테면 나인뮤지스는 거의 모든 여성들의 욕망이죠. 다들 예쁘고, 늘씬하고… 그런 욕망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상품처럼 걸그룹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걸그룹들이 너무 야한 것에 집착하는 것 같지 않나요?
저도 소속사 대표에게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어요. 좀 더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 대표가 그러더군요. “사람들의 소비 태도, 욕망이 쉽게 바뀌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이 인터뷰는 2013년 10월 4일에 작성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