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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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성공 이민 비결,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Myvan 2017. 7. 5. 11:11

얼마 전 만난 한 노신사는 가끔씩 가슴이 먹먹하다고 한다. 밴쿠버에 정착한 지 수십년이 지났건만, 어쩌다 한번씩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다. 이곳에서 태어나 그리고 지금은 장성한 아들 녀석에게 “넌, 어느 나라 출신이니?”라고 누군가 묻는 것을 볼 때마다, 시민권만 있을 뿐이지 나는 영원히 캐나다인은 될 수 없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낯선 것도 대개의 경우에는 시간과 함께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새 운동화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발과 친숙해질테고, 새 직장의 책상도 언젠가는 ‘내 것’이라는 생각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거리의 간판도, 길에서 눈이 마주친 이들에게 ‘하이’하며 인사하는 것도,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에는 팁을 남겨두는 것도 일상이 된다.

그런데도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혹자는 이 사회에 대한 소속감이 없기 때문에 그렇단다. 그 소속감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김광수씨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누군가 해야 할 일 하고 있을 뿐
김광수씨의 삶을 들여다 보는 둘 중 한 명은 ‘이 사람 참 독특하다’는 짧은 평가에 섣불리 동의할지 모른다.

그는 오늘도 쓰레기를 줍기 위해 길을 나선다. 누군가 무심코 버린 담배 꽁초부터 잔뜩 찌그러져 있는 콜라캔까지 줍기도 참 열심히 줍는다. 재활용품을 주워 생계를 해결하려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당장 돈이 되는 깡통 같은 것들은 주변 노숙자들에게 아무 댓가 없이 건넨다. 사는 집도 그럴싸한 2층 단독인데다 굴리는 자동차도 반듯해 보인다. 쓰레기에 정신 팔려 있는 그의 등을 톡톡 치며 ‘도대체 이유가 뭔가요?’라고 묻고 싶어졌다.

“별 다른 이유나 계기 같은 것은 없어요. 우리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건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누군가가 바로 저일 뿐이에요. 내가 이 일을 한다고 해서 착한 사람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이 일을 하지 않는 다른 이들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결코 아니에요.”

2002년 이민 왔을 때부터 거리의 청소부를 자처했으니, 만 10년 넘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왔다. 자신이 사는 랭리시 68애비뉴부터 88애비뉴까지는 일상적으로 훝고 있고, 피트메도우 붕어 낚시터도 꼼꼼히 챙긴다. 영역을 넓혀 해리슨 핫 스프링스 입구까지 간 적도 있었다.

“쓰레기를 줍는다는 것은 내가 그곳의 이방인이 아니라 주인이라는 뜻이에요. 내 것이 아니니까, 내 공간이 아니니까, 쓰레기를 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겁니다. 물론, 주인들은 그렇지 않겠지요.”

붕어 낚시터에서 버려진 쓰레기를 묵묵히 치우는 모습을 보며 동네 주민들이 먼저 마음을 열었다. 그를 도와 낚시터를 말쑥하게 다듬은 사람은 어쩌다 한번 들르는 낚시꾼이 아니라 ‘주인’인 바로 그 동네 주민들이었다.

쓰레기 줍는 일을 하며 기분 상한 경험도 몇 차례 있었다. ‘아저씨, 한국인 맞죠?’라는 기습 질문과 함께 마치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 맥주캔들을 모조리 던져놓고 간 사람도 있었고, 동전 몇 개를 대뜸 주려는 사람도 만났다.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어덥트 스트리트’(Adopt a street)를 신청한 후에는 이러저러한 오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약 1km 구간을 주기적으로 청소하겠다고 서명하면 시는 그 길에 자원봉사자의 이름을 달아준다. 랭리에는 ‘This street is adopted by: Gwang-soo Kim’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칭찬받기 위해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시에 자원봉사자로 등록하고 나니 저를 보는 시선이 한층 달라졌다는 게  느껴져요. 고맙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도 부쩍 늘었구요.”

 


보답은 ‘정’으로 돌아오더라
그의 ‘이민사’를 듣고 있다 보면,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일하는 것이 ‘특기’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체육 교사로 일하다 밴쿠버에 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영어학교에 다녔는데, 아무래도 이땅에 마음 붙이고 살려면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3년 그는 무턱대고 써리 시청을 찾아갔다. 돈은 한푼도 받지 않을테니 하루종일 일만 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시를 위한 자원봉사자가 되겠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가드닝이었다.

“2년 반 동안 돈 한푼 받지 않고 풀타임으로 일했어요. 작업화 밑창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죠.”

몇몇 사람들은 그에게 왜 이리 약지 못하냐고 타박할 지 모른다. 하지만 자원봉사활동은 그에게 수업료나 다름 없었다.

“영어와 캐나다의 문화를 알게 됐으니 저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많은 걸 얻은 거죠. 게다가 가드닝 기술까지 익히게 됐습니다.”

2005년 그는 자신만의 가드닝 업체 ‘랭리 킴스 가드닝’을 차리게 된다. 사업은 순탄했다. 비결은 마음 씀씀이에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홀로 정원을 가꾸는 노인들을 그냥 지나친 법이 없었다. 돈도 받지 않고 후다닥 일을 끝내 주면, 상대방은 그 호의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그 마음 그대로 고객을 대했으니, 사업이 잘 될수밖에.

“누군가를 도와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사회에 대한 소속감 같은 것이 생기게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이 되는 거죠.”

보답은 돌아온다. 그의 도움을 받은 한 할머니는 자신의 집에 동네 한인들을 초대해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 주곤 한다. 몸이 좋지 못해 가드닝 사업은 1년 전부터 휴업한 상태지만, 김광수씨는 주고받는 ‘정’을 통해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캐나다에서 이방인이 아닌 ‘주인’으로 살고 있다.


*이 인터뷰는 2013년 1월 13일에 작성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