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토리
캐나다 명문 맥길대 조기 졸업 후 국제기구로... 본문
몇몇 처세술 책들의 주장처럼 성공을 위한 공식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마다 성공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친구 딸이 말이야”라고 시작되는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 애니 장(한국명 장유정)씨에 대한 소문을 들은 후부터 줄곧 들었던 생각이다.
“아무리 좋은 학교 나와도 일한 경력이 없다면…”
애니씨의 이른바 “스펙”은 현실 세상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맥길 대학교를 3년만에 졸업했고, 같은 대학의 석사 과정을 마치기까지는 불과 1년 6개월이 걸렸다. 줄곧 공부에만 매달린 것도 아니다. 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 나이가 된 이후부터, 아르바이트와 함께 하는 삶이 시작됐다. 대학에 가서도 그녀는 시간을 쪼개 커피 전문점이나 옷가게 등에서 계속해서 일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유수 국제기구 중 하나인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WRI)에 입성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교통 기획자(Transport Planner)로 불린다. 이쯤에서 나이 공개… 그녀는 91년생, 만으로 스물셋이다.
스펙을 보아하니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을 것 같아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놀기 좋아하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어요. 엄마나 아빠 모두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맥길 대학교의 입학 요구 조건이 까다롭지 않나요?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가 들어가기엔 말이죠.
11학년 때부터 IB코스를 밟게 됐는데, 그 덕분에 대학 가기가 한결 수월해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IB코스라는 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건 아니잖아요.
처음 IB반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네가 버틸 수 있겠냐는 얘기부터 들었어요. 10학년 때의 성적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전 그런 평가에 개의치 않았어요. “그냥 한번 해보지 뭐”라는 마음, 이게 다였어요.
공부를 따라가기가 좀 벅차지 않았습니까?
IB의 수준 자체가 높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부 분량이 늘어날 뿐이죠.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워야 하니까요.
시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겠네요.
물론이에요. 게다가 전 11학년 때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때문에 그 부분에 더 신경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했나요?
당시 스타벅스에서 일주일에 25시간에서 30시간 정도 일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공부나 일 둘 중 하나는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무엇을 포기할 지 결정할 수 없었어요. 일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 공부를 멀리하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시간을 좀더 알차게 쓰는 것, 이게 해결책이었어요. 무엇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을 줄여야 했어요. 일하는 틈틈이 휴식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순간이 제겐 공부 시간이었어요. 짜투리 시간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은 거죠. 어찌됐건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시간 관리의 중요성이나 방법 등을 저절로 체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애니씨를 집안에서 다소 안쓰럽게 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아니요. 제 부모님은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일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늘 얘기하셨어요.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와도, 우수한 성적표를 갖게 돼도 일한 경력이 없으면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게 부모님 생각이었지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려는 부모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네요.
그렇지요. 앞서 애기했지만, 저희 부모님은 단 한번도 제게 무엇을 강요한 적이 없어요. 덕분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됐고, 이것저것 많이 도전해 볼 수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요?
제 꿈은 다양했어요. 요리사도 되고 싶었고, 패션 쪽으로도 관심이 많았어요. 한번은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지요. 그래서 관련 공부를 해봤는데,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 제게 엄마, 아빠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한마디로 부담 없이 포기할 수 있었고, 부담 없이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얘기네요.
맞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아주 단순한 이유”
그래서 고른 진로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학부 때의 과정이 도시설계학(Urban Planning)이었습니다. 이 분야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12학년 때 지리 수업을 받았는데, 이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참 좋아하던 과목이었거든요. 대학에 입학에서는 경제학도 복수 전공으로 해봤지만, 나중에는 도시설계학이 제게 더 맞는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대학 과정을 3년만에 마쳤다고 들었어요. 공부 비결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그것이 궁금한데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가 제 공부의 목적이 아니었어요. 그게 목적이었다면 저 역시 심한 압박감에 시달렸을 거에요. 강의 내용을 무조건 외우려고만 했겠지요. 저는 암기보다는 이해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부 자체에 빨려들어가게 되고, 시험도 쉽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말처럼 쉬울 것 같지 않은데요.
저는 제가 배우고 싶은 것만 골라서 수강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공부하는 것이 싫지 않았어요. 저절로 동기 부여가 됐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대학에 와서도 부모의 바람만을 쫓아가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엔 학교생활이 많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싫어하는 공부를 억지로 해야 하니까 말이죠.
대학에 들어가서도 일을 병행했지요. 다시 한번 시간 관리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제게 주어진 시간은 전부 제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저의 시간은 시작돼요. 저는 그 시간을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었어요. 놀고 싶을 때는 열심히 놀고, 자고 싶을 때는 열심히 자고, 공부해야 할 때는 열심히 공부하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시간을 낭비할래야 낭비할 수 없었지요. 무척이나 단순한 얘기 같지만 대학 시절 이게 제 원칙이었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졸업 후 취직이 쉬웠던 건가요?
제게도 취업 전선은 험난했어요. 이력서를 정확히 100통이나 썼지요. 자기 소개서 하나 만드는 데에는 두 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공을 들였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선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요.
납득이 안 가는데요. 이른바 명문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았잖아요.
석사 과정을 마친 게 구직에는 오히려 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격이 넘친다는 이유로 지원할 수 있는 분야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제가 볼 땐, 대학원은 직장 경력을 쌓은 뒤에 가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구직자들에게 해줄 얘기가 있다면?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대개 초조해지죠. 대학원이라도 가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회사에서 원하는 자격 조건이 충족된 상태라면, 기회는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100번 도전 끝에 홈런을 쳤습니다. WRI에 들어가게 됐으니깐….
지난해 10월부터 WRI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워낙 다 쟁쟁해서 살짝 주눅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적응도 됐고, 하는 일에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입사 과정이 궁금한데요. WRI에서 일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개발도상국가의 교통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일인데, 이것이 제 전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고용된 게 아닐까 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애니 장씨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개발도상국가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녀는 “개발도상국가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줄이는 것도 제게 주어진 임무”라며 “관련 통계 자료를 보다 보면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이 인터뷰는 2015년 5월 15일에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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