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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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에서 활동 중인 <아이샤 꾸리>의 작가, 장미란

Myvan 2017. 6. 30. 06:33

1995년 12월 24일, 서울 무교동 코오롱 빌딩에 자리 잡은 캐나다 대사관 안. 예술가 자격으로 캐나다 이민을 신청한 한 화가와 그의 아내, 그리고 1년 차이로 태어난 이들의 어린 두 딸이 영사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자 심사를 위해서다.

얼마나 지났을까. ‘들어오세요’라는 말에 남편이 먼저 일어섰다. 영사는 남은 셋에게도 손짓을 했다. 심사는 신청인만 받으면 되는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담당 영사는 유난히 키가 큰 여자였다. 이 낯선 얼굴은 화가가 제출한 포트폴리오를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저는 이 그림이 제일 좋은데요”라고 말했다. 자기네 땅에서 살아도 된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이젠 됐군,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화가의 아내에게 질문이 주어졌다.

“당신은 캐나다에 가면 무슨 일을 할 건가요?”

막막했다. 공부하지 않은 곳에서 툭 튀어나온 시험문제 같았다. ‘정답’에 대한 힌트를 찾기 어려웠다. 그녀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했고, 결국 이렇게 답했다.

“저는 어떤 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영사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삿말과 함께 어른 손바닥보다 살짝 클까 말까 한 캐나다 국기를 딸들에게 건넸다.

대사관에서 나오고 1년 반이 지난 뒤 캐나다 생활이 시작됐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대답은 그녀에겐 하나의 다짐이, 그리고 현실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장미란이다.



자녀에게서 순도 100%의 기쁨을 느끼려면…
그녀는 지난 몇 년 동안 꽤 푸짐한 상복(賞福)을 누린 작가다.

‘2005년 재외동포 문학상’ 논픽션 부문 우수상, ‘2011년 경희 해외동포 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2012년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에서 우수상, 2012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소설), 이것이 그녀의 전적이다. 얼마 전에는 책 한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책 표지 위에는 <신의 땅으로 떠난 여인 아이샤 꾸리>(21세기북스)라고 적혀 있다.

“먹고 살기 힘든 이민사회에서 폼나게 글이나 끄적거린 모양이군.”

남의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상투적인 질투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 보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는 영주권 심사 때 영사 앞에서 했던 ‘다짐’ 그대로 ‘아무 일’이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밴쿠버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녀 가족이 가진 것이라곤 두 달 정도 버틸 수 있는 생활비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이민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생선공장, 닭공장에서 일했다. 하루 네 시간 정도 밖에 잘 수 없어서 잠이 늘 모자랐지만 글쓰기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글을 쓰는 시간은 자신의 가치를 복원하는 기회였다. 하지만 몸은 숙면을 취하지 않는 그녀를 원망했나 보다. 빈혈을 방치했다 오랜 시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을 정도로, 몸이 좋지 못했다.

“그때 건강이 많이 상했는데 얼굴빛도 좋지 않았나 봐요. 한번은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저를 막 깨우더군요."

엄마는 무거운 눈꺼풀과 씨름하며 ‘왜?’라고 물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딸아이는 ‘아냐, 아무것도 아냐. 더 자’라며 얼버무렸다. 단잠을 방해한 이유는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제가 잘못된 줄 알았대요. 그래서 서둘러 저를 흔들어 깨운 거죠.”

딸아이는 엄마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마음에 겁이 덜컥 났을 것이다. 엄마는 누구보다도 그 마음을 잘 헤아린다. 그 마음 씀씀이 때문에 고된 노동도 버틸 수 있었던 엄마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순도 100%의 기쁨을 느꼈어요. 그 ‘절대 기쁨’이란 건 부모의 욕심이 개입되면 얻을 수 없는 거라 생각합니다. 자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 저희 부부는 이것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방목’을 선택했죠.”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아이들은 엄마에게나 아빠에게나 어떤 불평도 없었다. 지금은 똘똘한 여대생으로 성장한 두 딸들은 ‘우리가 그렇게 없이 산 적이 있었어?’라고 되물을 정도로 구김살이 없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다고 해서 행복하지 말란 법은 ‘당연히’ 없는 모양이다.

“남들이 비싼 돈 들여 하와이로, 멕시코로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도시락 하나 달랑 싸들고 스탠리공원 같은 곳을 찾았어요. 저희 부부 경험으로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건 어떤 화려함 같은 게 아니에요. 그들이 결국 기억하는 건, 부모가 옆에 있어 주었다는 것, 늘 같이 놀아주었다는 게 대부분이죠. 한번은 큰맘 먹고 로키를 찾았는데, 그 풍경에 대한 기억이 저희 아이들에겐 별로 없어요. 그보다는 함께 시시덕거리며 차에서 나눠먹던 김밥이나 햄버거, 혹은 함께 늦은 밤 영화관을 가거나 토요일마다 도서관에 갔던 일,  집안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장난치며 놀던 기억과 함께 나눈 '말'들이 훨씬 더 따스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더군요.  때문에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해주지 못한다 해도 그런 이유로 미안해 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 오길 잘했어, 참 잘했어
시간이 흐르면서 반듯한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살림살이는 나아졌다. 아파트 렌트비를 마련하지 못해 흐느꼈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 윤택해진 삶이다. 장미란씨는 주머니가 텅 비어있었던 그때 그 시절의 경험 하나를 끄집어 냈다.

“아파트에 세들어 살 때였죠. 없이 살아도 렌트비는 꼬박꼬박 제 날짜에 냈는데, 갑자기 돈이 뚝 떨어진 거에요. 1000달러가 부족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신에게 소원을 얘기해 보았다.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식의 기도는 신과의 대화가 아니라 떼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말이다.

“참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났어요. 평소 알고 지내던 교인 한분이 저희 집에 갑자기 찾아오더니, 저금통 하나를 주고 가셨습니다. 이 돈은 아무래도 네가 써야할 것 같다는 말씀과 함께.”

저금통에는 정확히 1000달러, 꼭 필요한 돈만 들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큰돈을 해달라고 빌 걸 그랬나요? 어찌됐건 그 돈을 앞에 놓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요. 차가 폐차될 정도였으니까 큰 사고였죠. 상대방 과실이었는데, 그쪽에서는 오히려 제 잘못이라고 우기더군요.”

쌀쌀한 날이었다. 사고를 당한 채로 차 안에 앉아있는데, 초로의 여성 두 명이 바깥에서 걱정스런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분들이 그러더군요. 내가 다 봤으니까 걱정 말라고, 목격자가 되어 주겠다고. 진술을 하려면 두 시간 정도는 족히 걸릴텐데,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고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요.”

저절로 마음 따뜻해지는 인연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밴쿠버에 오길 참 잘했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본능처럼 한국이 그리워지는 날들도 많았더랬다.

“한국에서 떨어져 살다 보니 뭔가 단절됐다는 느낌 같은 게 있었어요. 모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 모국어를 마음껏 접하지 못할 때는 불안하기까지 했지요.”

그녀의 불안감은 자신의 책 <신의 땅으로 떠난 여인 아이샤 꾸리>에서도 느껴진다. 논픽션인 이 책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근무했던 조남표씨(장 작가의 이모로 둘은 다섯 살 차이다)를 다뤘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의 삶이 소재인 탓인지 행간에는 캐나다라는 ‘타국’에서 살아가는 장미란씨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녀는 책에서 송봉모의 ‘집념의 인간 야곱’을 인용했다.

‘북극곰은 마취제 주사를 맞은 뒤 비행기에 실어 무려 500km나 떨어진 곳에 데려다 놔도 자기 집을 여지없이 찾아간다고 한다. 얼음뿐인 불모지에는 어떤 냄새도, 어떤 지형적 표시도 없고, 빙하가 수시로 떨어져 나가면서 수로가 자주 바뀌는데도 반드시 자기 집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장미란씨는 인용문구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가슴이 뻐끈하고 눈물이 흘렀다. 대책 없는 귀소 본능이 발동한다는 것은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것일까?’(신의 땅으로 떠난 여인 아이샤 꾸리 中 p125)

장미란씨에게 물었다.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대책 없이 돌아가고 싶은 그 마음을 어떻게 달래셨나요?

“마음이 갈팡질팡하면 익숙한 곳이 그리워져요. 새롭게 뭔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자신을 지배하죠. 하지만 다시 찾아간 곳은 예전의 그곳이 아닌 경우가 많을 겁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귀소’라는 것이 물질적 공간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라는 것,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 바로 귀소라는 것… .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 공간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의 삶, 지금의 나에 충실하려고 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귀소’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작가는 끝으로 ‘결핍’에 대해 얘기했다.

“날마다 풍성하기만한 식탁 위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하잖아요. 이것이 결핍이 우리에게 건네는 교훈으로 느껴집니다.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하기보단, 가질 수 없으니 더 이상 원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면 ‘물질’에만 초점을 맞춘 생활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인터뷰는 2013년 3월 1일에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