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토리
밴쿠버 명소, 론스데일 키에 가다 본문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찬찬히 읽다 보면, 초기 이민자들의 애환 같은 게 쉽게 느껴진다. 소설 속 이민자의 가슴속엔 고향 잃은 설움이 늘 가득 담겨 있지만, 마음 놓고 왈칵 쏟아내진 못한다. 묵묵히 흐르는 바다를 보며 “태평양 건너 내 조국이 있겠지, 내 사랑하는 피붙이들이 있겠지”하고 중얼거릴 뿐이다. 바닷물에 손을 담가 보기도 한다. 자신의 손을 거친 그 바닷물이 고향 산천에 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때의 이민자를 지치게 하고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준 것은 바로 ‘향수’다.
현시대를 사는 이민자들도 어느 순간 향수와 맞서게 될 때가 있다. 향수병에 시달린다고 얘기하는 게 초기 이민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떠난 자들 가슴 한 켠에 숨겨져 있는 뭉클한 감정을 외면하긴 힘들다. 대한민국을 체질적으로 폄하하며 괜히 쿨한(?) 척 하는 부류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추억은 한두 가지쯤은 있다.
이런 추억은 가끔씩 ‘식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밤늦은 시간 갑자기 청진동 해장국이나 신림동 순대볶음이 먹고 싶다면, 왠지 동네 치킨집에 주문전화를 걸어보고 싶다면, 예전에 놀던 거리를 몸이 그리워한다는 뜻 아닐까.
밴쿠버에 살다 보면 향수나 추억을 자극하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가슴 속 품은 사연이나 경험에 따라 추억이 방울방울 피어 오르는 공간도 다채로울 터. 어떤 이들에겐 놀랍게도(?) 가장 이국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뿌리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이유에서, 노스 밴쿠버 ‘론스데일 키’도 그 중 하나다.
시버스(Sea Bus) 선착장에 위치한 론스데일 키 퍼블릭 마켓 인근은 갖가지 구경거리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햇살 따스한 날이면 마켓 앞 분수대에 앉아, 한강을 쏙 닮은(!) 바다 건너 다운타운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미니 콘서트가 열리는데, 하루종일 넋 놓고 쳐다만 보고 있어도 즐겁다. ‘재미없는 도시’로 낙인 찍힌 밴쿠버라지만, 이처럼 흥미진진한 장소도 있기 마련이다.
마켓 안으로 들어서면, 과일이나 각종 해물, 와인 등을 살 수 있는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차가운 얼음 위에 누워있는 생선 앞에서 ‘주인양반, 이놈 정말 신선한 거요?’하고 묻는 연륜 있는 주부들도 보인다. 아이스크림을 한입 가득 입에 물고 행복해 하는 아이들도 있다. 시장 한 편에는 피시앤칩스부터 누들까지 각 나라 먹을거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가도 있다. 음식을 먹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이 왠지 거슬리지 않는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피부 색깔 다른 그들에게서 이상하게도 고향의 향기가 난다.
시장 밖에서도 그 향기를 찾아낼 수 있다. 서쪽으로 2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아담한 공원에서다. 밴쿠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원을 소개한다는 게 좀 쑥스럽긴 하지만, ‘워터프론트 파크’라는 이름을 지닌 이곳은 왠지 다르다. 그 이유는 잘 가꾸어진 꽃밭과 이곳 저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민들레 홀씨 때문인 것 같다.
민들레 홀씨를 불며 바닷가 저편 다운타운 빌딩숲을 바라보다 보면,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절로 고향생각이 날 지 모른다. 민들레 홀씨 알러지만 없다면 말이다.
(이쯤 해서 퀴즈 하나! 워터프론트파크에 가면 우리에게도 낯익은 상징물이 하나 나옵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하며 많은 분들이 깜짝 놀라실 것 같은데요. 혹시 고향이 제주도라면, 반가움은 아마 배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상징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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