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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의 대표 연극 극단 '하누리'를 소개합니다

Myvan 2017. 7. 7. 23:49
인천공항에서 밴쿠버까지의 비행 거리는 약 8200km. 컵라면까지 합쳐 기내식을 서너번은 먹어야 마침내 랜딩이 가능한 먼 거리다.

하지만 요즘에는 ‘8200’이라는 숫자나 태평양의 깊이 같은 것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 창만 열면 어디서든 한국과의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상통화로 부모의 안부를 물을 수 있고, 친구의 승진 소식에 축하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물론 거의 실시간으로 답글이 전송된다.
 
그런데도 왈칵 쏟아지는 게 있을 수 있다. 어떨 때는 어린시절 뛰어놀았던 동네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향수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참으로 스마트해진 세상인데도 말이다. 밴쿠버 한인사회에서는 이민자의 이런 마음을 달래줄 소중한 이벤트를 매년 가을 만날 수 있다. 극단 하누리의 연극 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제공=하누리




하누리의 작품들은 찬란한 여름이 막을 내리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는 우기의 거의 맨 앞에 무대에 올려지곤 했다. 2011년의 ‘짬뽕’이 그랬고, 지난해 ‘오동리 소방서’도 가을에 찾아왔다. 올해에는 10월 3일 ‘논두렁 연가’가 관객들 앞에 선다.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김현석씨와 배우 정훈희, 신만재, 윤시나, 황준필, 박상엽씨, 그리고 분장을 맡은 김선아씨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이들은 단 5회 공연을 위해 1년을 투자하는 ‘연극쟁이’들이다.


“연극이 없다면, 너무 따분할 것 같아요”

‘논두렁 연가’라… 뭔가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제목이네요. 어떻게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된 건가요?
김현석: 현재 한국에서 상연 중인 작품인데, 우연한 기회에 대본을 접하게 됐어요. 다 읽고 들었던 첫 생각은 ‘아, 바로 우리 얘기구나”라는 거였어요.

어떤 내용이길래 그렇게 느낀 거죠?
김현석:간단히 소개하면 이래요. 회사 발령으로 해외로 나가게 된 손자와 이를 반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연극이지요. 손자가 외국으로 떠나면 다시는 못볼 것 같은 마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방해공작을 펼칩니다. 때로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또 때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하죠. 이민이라는 큰 결심을 한 우리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런 모습이 꽤 익숙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만재: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이에요. 아마 많은 분들이 ‘논두렁 연가’의 메시지에 공감할 것 같습니다.

작품을 결정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연출이 ‘올해는 이걸로 하지’라고 하면 다들 따르는 건가요?
정훈희: 아니요, 단원이라면 누구나 작품을 추천할 수 있어요. 한해 공연이 끝나면 한두 달 쉬다가 바로 다음 작품 준비에 들어가는데, 이때 단원들에게 숙제가 주어지요. 
(정훈희씨는 하누리의 사무장으로, 극단 창단 때부터 함께 한 최고참 중 한 명이다.)

어떤 숙제죠?
김현석: 선배들로부터 각자 대본을 구해오라는 명령이 떨어지죠. 이렇게 작품들이 모여지면, 그 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또 한인들에게는 어떤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을 지를 놓고 회의를 시작합니다.
정훈희: 단순히 내용만 훝어보는 게 아니라, 배우들이 직접 대본을 읽어보고 작품의 느낌을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추리고 또 추려서 그해의 작품이 결정되는 거죠.

그렇다면 한번의 정기공연을 위해 거의 1년을 쏟아붓는 거네요. 좀 부담스럽지 않나요?
김현석: 아니요, 전혀요. 연극이 없다면 제 일상이 너무 따분해질 것 같아요.

그래도 준비하는 과정이 그렇게 쉬워보이진 않는데요.
김현석: 물론 그렇긴 하죠. 연극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은 단원 중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좀 힘든 부분은 있을 거에요. 저는 무대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고, 다들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일하는 혹은 공부하는 틈틈이 연극을 준비하는 거군요.
황준필: 저 같은 경우는 프로 배우가 꿈이에요. 학교(밴쿠버필름스쿨)에서 영화를 전공하기도 했고…. 그런데도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은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가 있어요. ‘내가 뭐가 좋다고 이 일을 하는 걸까?’라고요. 어떤 금전적인 보상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연습 자체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요.

그래도 매년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일종의 만족감 때문인가요?
황준필: 아마도요. 그게 저도 참 신기해요. 
박상엽: 저는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는데, 하누리에 들어간 후 성적이 많이 떨어졌죠. 그래서 부모님 걱정이 많았는데, 한번 맛들인 무대는 쉽게 포기가 안 되더군요. 왠지 뭔가 끌리는 게 있어요.




                                                                                                            사진제공=하누리



“재밌게 준비한 작품, 마음껏 즐기시길”

하누리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된 건 가요?
박상엽: 준필이형 연극하는 거 보고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연습 장소에 따라가게 됐어요. 그때 덜컥 인연을 맺게 된 거죠. 여러 사람을 한번에 사귈 수 있게 된 것, 이게 저는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신만재: 저는 2011년 ‘짬뽕’ 무대에 섰는데, 그 전까지는 연기를 해본 적인 단 한 차례도 없어요. 우연히 단원 모집 광고를 보게 됐고, 오디션을 봤고, 그래서 한 식구가 된 거에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거군요.
신만재: 예, 그랬죠. 하지만 얻은 것은 많아요. 저는 예전부터 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동경해 왔는데, 하누리에서 저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게 무엇보다 뿌듯합니다.

오랫동안 하누리와 함께 하겠군요.
신만재: 아니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에 돌아갑니다.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르지만 말이죠. 저 뿐만 아니라 준필이나 상엽이도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하누리가 많이 쓸쓸해질까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다시 ‘논두렁 연가’ 얘기를 해볼까요? 올해에는 하누리에서 직접 연출을 맡았는데, 한국 극단과 조율이 잘 안 됐던 건가요?(2011년 ‘짬뽕’ 때와 지난해 ‘오동리 소방서’ 때는 한국에서 연출이 초빙됐다.)
김현석: 그런 건 아니에요. 처음부터 우리끼리 해보자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잘 할 수 있다고, 해볼 수 있다고. 선배들을 포함해 다른 단원들이 결국에는 제 뜻을 따라주었죠.

고집을 부린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현석: 누구보다도 하누리를 잘 알고, 배우들의 능력이나 처한 상황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극 전체를 이끌 적임자는 나라는 어떤 자신감 같은 게 있었어요. 

다들 다른 업이 있으니까, 스케줄 조정 같은 것은 큰 문제겠네요.
김현석: 그렇지요. 한국에서 연출이 오면 그 분 스케줄을 생각해야 하니까 그런 면에서 다소 어려움이 생기죠. 어찌됐건 연출을 맡으면서 제가 단원들에게 한 얘기는 하나에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재밌게 연습하자고. 그게 가장 중요한 거니까.

그렇게 즐겁게 준비했는데, 막상 연극이 막을 내리면 무척 허탈하겠어요.
정훈희: 공연이 끝나도 ‘연습하러 가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버릇처럼 들 때가 있어요. 그때는 너무 허전하지요. 어떨 때는 연습장소를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눈물이 핑 돌기도 해요. 그만큼 연극이 재미있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다는 얘기겠지요.

이번 공연은 어떤 분들이 즐기면 좋을 것 같나요?
김현석: 그거 있잖아요. 좀 상투적인 문구…’남녀노소 누구나 다 환영합니다!’. 가족들이 한자리에서 한참 웃다 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2013년 8월 30일에 작성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