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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명문 음대 매너스에 들어가다

Myvan 2017. 6. 30. 12:51
“처음엔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녀가 피아노 건반을 처음 눌러본 건 겨우 네 살 때의 일이었다. 조기교육에 사활을 건, 열성 부모를 둔 탓이 아니었다. 딱 3년 터울의 남동생이 울음 소리와 함께 세상에 출생 신고를 하기 전후부터, 그녀는 피아노 학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어머니 한현진씨의 얘기다.

“한국에 살고 있을 때였어요. 둘째 낳기 전 여울이를 봐줄 때가 필요했는데, 그때만 해도 네 살짜리 아이를 보낼만한 곳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알음알음으로 찾게 된 곳이 피아노 학원이었어요.”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뭔가 거창한 이유 같은 것은 없었지만, 건반 앞의 아이는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다른 친구들보다 진도가 훨씬 빨랐다. 그녀의 첫 피아노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했다.
“여울이…, 피아노를 전공해도 될 것 같은데요. 확실히 재능이 있어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지난 2000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밴쿠버에 정착한 이후에도 만남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계속됐다.


피아노가 그렇게 좋았어요? 네 살 때부터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한눈 팔지 않고 그저 한길만을 걸어온 것 같은데요.
솔직히 말하면 너무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싫어하지도 않았어요. 이런 어정쩡한 마음은 음대에 진학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피아노에 온전히 마음을 주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대학 졸업을 1,2년 앞두고, 그때부터 무대에 서는 것 뿐 아니라 연습하는 시간 자체도 즐기게 됐거든요.

굳이 비유를 하자면, 오랫동안 친구처럼만 지내오다 자연스레 연인이 된 셈이군요. 피아노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건데, 그럴만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뭐랄까요, 음… 그냥 알면 알수록 좋아지고, 그래서 다시 더 많이 알고 싶어지는, 그 대상이 제게는 피아노였던 겁니다.

대학 입학 전에는 피아노에 대해 잘 몰랐다는 건가요? 그 얘긴 좀 납득하기 어려운데… 소위 말하는 미국 뉴욕의 명문 음악학교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장학금을 받고 말이죠. 
음대 진학은 자연스러운, 그냥 어떤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말고는 접해 본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음악을 전공하는 것이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한여울씨는 대학 전형 당시 줄리어드를 비롯한 명문 음악학교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녀의 선택은, 뉴욕의 보석으로 불려지는 매너스음대였다.)

그래도 뉴욕까지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는 뭔가 남다른 계획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요? 매너스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한데요.
뉴욕은 누구에게나 기회의 땅으로 비춰지죠. 누구나 부푼 꿈을 갖고 뉴욕으로 향하고, 저 역시 더 많은 기회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학을 매너스로 결정한 건 그곳에 저와 마음이 통하는, 그래서 너무 배우고 싶었던 교수님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또 다른 이유는 매너스가 제게 장학금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것, 바로 그거에요.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미래를 맡길 것”

학교 생활은 어땠습니까? 그곳을 동경하는 후배들이 많이 있을텐데.
장학생 신분을 유지하려면 일정 이상의 성적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아노를 더 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지요. 문학이나 에세이 쓰기에도 집중해야 했고…, 이렇게 공부만 하다보니까, 대회에 참가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 3학년 마치자마자, 뉴욕과 뉴저지에서 열린 국제 경연대회에 나가게 됐고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언급한 대회는 뉴욕에서 열리는 브래드쇼앤뷰오노콩쿠르(Bradshaw and Buono International Competition)와 뉴저지에서 개최되는 유니온시티필하모닉콩쿠르(the International Union City Philharmonic Competition)다.

그 상을 받은 것이 혹시 아까 얘기한 피아노가 더 좋아지게 된 계기가 된 건가요?
예 맞아요. 입상은 생각도 하지 않았거든요. 다른 사람들처럼 연습에만 몰두할 입장도 아니었고…. 그러다 상을 받게 되니까 무척 기뻐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때부터 말 그대로 미친듯이, 미친듯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기회의 땅 뉴욕을 뒤로 하고, 매너스 졸업 후 전액 장학생 자격으로 UBC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됩니다. 밴쿠버로 돌아온 이유, 주변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지 않던가요?
맞아요. 왜 돌아왔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저의 답은 제가 매너스를 선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마음이 통하는 교수님으로부터 배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캐나다 국적자로서 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게 다인 것 같은데요. 아, 한 가지 또 있네요. 밴쿠버에는 제 가족이 있잖아요. 부모님과 지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각종 콩쿠르 준비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이미 그 결과물이 보이는데요. 전국 음악 대회(the Canadian National Music Competition)에서 은메달을 땄지요?
예,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2월에는 밴쿠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콘체르토 대회에서도 금상을 받게 됐는데, 그 덕분에 밴쿠버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10월 18일 독주회를 열게 됐어요. 제게는 너무 뜻깊은 날이 될 겁니다.

이밖에 호주 국제 콩쿠르에서 2등을 했고, 일본 대회에도 참석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대회에 자꾸 나가고, 실적이 하나둘씩 쌓이다 보면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전공하고 싶은 한인사회 후배들에게 해 줄 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이민자 봉사단체에서 진행한 대학입학 설명회에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만난 부모님들의 관심은 오로지 의대, 법대 진학인 것만 같아 조금 씁쓸했던 기억이 나요. 의사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법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변호사들의 한 달 수입은 보통 얼마 정도 되나요?…. 이것이 부모님들의 공통 관심사 같았죠. 물론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미래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시는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중요한 건,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요? 글쎄요, 음…. 인생의 목표가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저는 이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꿈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의 목표는 좀 더 많은 대회에 나가는 것, 그게 전분에요. 계속해서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이겠지요.


인터뷰를 마친 바로 그날, 한여울씨로부터 메일이 하나 왔다. 그 속에는 꿈과 희망에 대한 좀 더 자세하고 솔직한 얘기가 들어 있었다. 메일의 일부를 고스란히 옮겨 본다.
“아까 꿈이나 장래희망을 물어보셨잖아요. 물론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냥 피아니스트가 아닌 동물과 자연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서도 굳이 유명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못한다 해도 동물과 자연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